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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북인 것은 알지만, 그래도 좋은 글은 나눠읽어야 한다. file_vxQ30y.pdf
전화하는 혹은 만나는 친구, 후배들마다 "아직도 그 글을 안 읽었냐"는 핀잔을 듣다가 주말을 이용해 이준구 교수의 '슬픈 종부세'라는 글을 읽었다. 이준구 교수에 대해서는 잘 몰랐는데, 우리나라에서 '맨큐의 경제학'보다 많이 팔리는 경제학 교과서를 쓴 신고전학파 교수라고 한다. 이명박 정부가 나쁜 것은 '과거로의 회귀'라서가 아니라, 아무 판단없이 모두 뒤집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날카롭다. "흥미로운 점은 주요한 진보적 개혁이 거의 모두 보수적 정부하에서 이루어졌다는 사실이다. 예를 들어 국민연금제도 등의 사회복지제도가 본격적으로 도입된 것이 전두환 정부 때였으며, 토지공개념이란 급진적 성격의 개혁안이 나온 것은 노태우 정부 때였다. 또한 김영삼 정부 때는 금융실명제와 공직자 재산등록이라는 굵직한 개혁이 이루어진 바 있다. 지금 이런 개혁안이 나왔다면 보수진영은 좌파의 책동을 막아야 한다고 난리를 쳐댔을 것임에 틀림없다" 얼마전 학교를 지나가다가 총학생회가 만든 홍보물을 보았다. 지난해 선거 때 내밀었던 공약들을 점검하고 2학기 행사를 알리는 홍보물이었다. 졸업생 신분이었지만 유심히 읽었다. 이번 총학생회는 이른바 '비운동권'이면서도 "총여학생회를 없애겠다"는 식의 조류적 행태를 하지 않았고, 오히려 촛불시위에 가장 열심히 참여하는 등 새로운 '비운동권'의 모습을 보였다.
간만에 새벽길님의 블로그에 놀러갔다가
메이데이의 '동지에게'라는 민중가요를 들었다. 생각해보면 동아리방에서 술 마시고 고래고래 민중가요를 부르던 시절보다는 요즘 같은 순간에 이런 노래들에 더 큰 울림을 받는 것 같다. 누군가가 나에게 "쉽게 무너지지 말자" "우리는 당당하지 않나"라고 말을 건내는 느낌이다. (아래 노래는 새벽길님의 포스팅에서 납치) 메이데이 - 同志에게
1. 두려워 알고 있어 후회할 수도 있지 나를 봐 알고 있어 고개 숙이지 마
음 알고 있어 돌아가기도 했지만
내가 있잖아 네 오랜 동지 우리는 이렇게 아름답게 싸워왔잖아 우리는 이렇게 당당히 서 있잖아 인정할 순 없지 쉽게 무너질 순 없어 내가 있잖아 네 오랜 동지
우리는 이렇게 아름답잖아 우리는 이렇게 당당하잖아 우리는 이렇게 아름답잖아 우리는 이렇게 당당하잖아 ![]() 16일 오후 1시 YTN 뉴스 생방송 도중 YTN 직원들이 든 피켓이 그대로 케이블을 타고 전국에 방송됐다. 순간 얼마전에 <독설닷컴>에서 본 YTN의 황모 기자에 대한 글이 생각나, 다시 읽어보았다. 휴가를 쪼개 언론자유를 염원하는 아름다운 모습을 보고 있자니 이번에는 1971년 봄이 떠올랐다. 책장의 책들을 들춰보았다. (참, 특종기자는 오보도 많이 한다더니, <독설닷컴>은 후배를 거느리며 활약하는 1진 기자를 '막내기자'라고 잘못 보도했다. ㅋ) 글은 총 3개다. 이 글들이 쓰여진 시간은 1971년 봄, 장소는 대개 세종로 사거리이다. 1971년 봄은 엄혹하던 박정희 시대. 71년 4월 27일에는 제7대 대통령 선거가 예정돼 있었고 박정희 대통령과 김대중 후보 사이의 경쟁은 꽤 치열했다. 이에 앞서 박정희는 1969년 9월 국회 날치기 통과로 상정한 '3선 개헌안'(6차 개정헌법)을 국민투표에 붙여 통과시키는 무리수를 두면서까지 3선 도전에 집착했다. 대통령 선거를 반년 앞둔 1970년 11월 13일. 전태일(全泰壹) 열사가 평화시장 등 3개 시장내 7600여 명 노동자들의 근로조건 개선을 외치면서 자기 몸을 불살랐다. 그러나 언론은 이 사건을 한두 번 짧게 보도했고 한두 신문에서 아주 피상적인 사설로 다뤘다. "뭔가 아니다"라는 술렁임이 퍼져나갔다. 이듬해 3월 26일, 세종로의 동아일보사 앞에 몰려온 서울대생 50여명은 언론화형식을 벌이면서 '언론인에게 보내는 경고장'을 낭독한다. 언론인에게 보내는 경고장
언론자유 수호선언
언론자유선언문
<독설닷컴>에 갔다가 <시사인>의 차기 편집국장이 남문희 전문기자라는 것을 알았다. 최근 '남문희'라는 바이라인을 찾기 힘들어 왜 그런지 궁금했는데,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었다. <시사인>에서 한반도 지면이 제일 좋았기 때문에, 기대와 걱정이 마구 교차한다. 앞으론 지면에서 남문희 국장이 꼼꼼히 취재한 2~3장의 기사를 볼 수 없으라는 아쉬움이 크다. 김훈 선생의 조언글(펌) -언론인으로서 무엇을 가장 갖춰야 할까요.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0803271741105&code=210000
세상이 거꾸로 돌아갈 때, 편하게 행동하는 것만큼 비겁한 것은 없다. 편하게 행동하는 것은 거꾸로 된 세상과 함께 걷는 일이기에, 그 자체가 세상을 망치는 짓이다. 그러나 거꾸로 돌아가는 세상이 아니라면? 그래도 편하게 행동하는 것은 비겁하다. 혹시나 잘못된 요소가 있어도 그냥 그렇게 세상을 굴리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매 순간의 불편함을 대신하려는 장치들, 규칙이건 수칙이건 방침이건 원칙이건, 이런 것들을 앞세우는 행동은 비겁하다. 비겁하지 않으려면 매 순간 박 터지게 갈등해야 한다. 박 터지게 살자는 우격다짐, 이것만이 비겁하지 않다.
요즘 네 모녀 실종사건을 취재하고 있다. 수습기자들이 하는 일이란, 형사과장실 옆 경찰서 로비에 죽치고 앉아 있다가 담당 팀 형사들이나 과장이 지나가면 들러붙어서 꼬치꼬치 물어보는 것이다. 주로 일진 선배들이 궁금해하는 것, 또는 회사에서 기사를 고치고 다듬는 데스크들이 궁금해하는 것을 물어본다.
담당 경찰서 형사과장은 원래 기자에게 친절했다. 내가 처음 마와리를 돌고 있던 날, 과장은 경찰서 로비에서 길 잃은 강아지처럼 우왕좌왕하던 나와 다른 수습기자들을 과장실로 불렀다. "만날 밤에 돌아다니니 힘들겠지만, 이런 과정을 겪고 나면 좋은 시절도 오니까 힘내" 과장은 이렇게 격려했다. 아직도 기자의 교육시스템은 도제식이라, 잠을 안 재우며 담당 경찰서와 관공서를 밤낮으로 빙글빙글 돌리는 '하리꼬미'를 유일한 교육방식으로 삼고 있다. 관공서는 보통 기사감이 없으므로, 수습기자들이 집중하는 것은 경찰서다. 따라서 기자를 제일 많이 보는 사람은 형사들이다. 별로 기사거리도 아닌데 (일진의 갈굼으로) 꼬치꼬치 묻는 수습기자들을 상대하는 경찰들은 종종 기자들에게 '학을 뗀다'. 기사도 안 되는 내용까지 너무 꼬치꼬치 캐묻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이 많은 형사나 과장급일수록 수습들에게 까칠하다. 그러나 여기 형사과장은 자식뻘인 수습기자들에게도 비교적 친절하게 대했다. 그런 형사과장이 어제 폭발했다. 어제 오후 형사과장이 굳게 잠긴 방문을 열고 2층으로 올라갔다. 수습기자들은 또 벌떼 같이 따라붙는다. 심지어 화장실로 들어가서 (대개는 일진들이 시킨) 질문을 퍼붓는다. 이게 지난 8일 모 방송사의 네 모녀 실종사건 보도 이후 일주일 가까이 된 풍경이다. 어제 오후에도 그렇게 수습기자들은 질문 공세를 퍼부었다. "유서에 범행 자백이 있나요?" "없어요" "그럼 (살해당한) 김씨 얘기도 있나요?" "없다니깐" "김씨에 대한 언급도 없나요?" "똑같은 걸 왜 자꾸 물어!!!" 평소에 친절하던 형사과장의 폭발은 이렇게 시작됐다. 형사과장은 "언론고시라고 불리는 어려운 시험을 뚫고 온 엘리트들이 사람을 쥐어짜 기사를 날조한다"며 꾸짖었다. 그리고 "내가 '확인되지 않은 사실이다'라고 말했는데도, 기사를 쓴다는 것은 내 얘길 안 믿는다는 건데, 그렇게 생각할 특별한 이유가 있냐"고 항의했다. 원래 경찰은 용의자 이모씨가 자살하기 전 수사망을 좁혀 9일 이씨의 약속 장소에서 검거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8일 모 방송사의 기사가 나가면서 이씨가 9일 예정된 장소에 나오지 않았다. 형사과장은 8일 방송이 나가기전 수차례 담당 기자에게 보도하지 말 것을 요청했다고 한다. 그러나 엠바고를 걸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기자들이 수사 중인 형사들을 쥐어짜는 것은 기사를 쓰기 위함이다. 매일매일 나가는 신문과 방송에 어제와 다른 기사가 실린다는 것은 (언론사 입장에서) 매우 중요하다. 그래서 언론사는 "새로운 것을 찾아내라"며 하루하루 쥐어짜며, 기자는 취재원을 하루하루 쥐어짠다. 그러다보니 기자는 취재원을 빨아내는 흡혈귀가 되고, 취재원은 바싹바싹 마르다 기자를 기피한다. 매일 나오는 상품, 게다가 정보를 판다는 일. '새로운 내용'이 중요하다는 것은 알겠지만, 그래도 이런 식으로는 오래 못간다. 다른 길은 없을까. 곰곰이 생각해본다. ![]() 한때 ‘있어 보이는’ 표현을 써야 글을 잘 쓴다고 착각한 적이 있다. ‘주옥같은 음악’, ‘불굴의 의지’, ‘개탄할 일’ 같은 어구 말이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이런 표현은 어찌나 진부한지, 이런 문구들은 자장면 곱빼기 위에 생크림을 버무려 놓은 느낌이다. <어거스트 러쉬 August Rush>도 그렇게 느끼한 영화다. 포스터에 꽃미남, 꽃미녀, 미소년이 멋지게 모여 있을 때 눈치 챘어야 했는데, “당신의 가슴을 연주할 특별한 이름”이라는 광고 문구에 속아버렸다. 음악 영화라는 점에서 <원스>와 동일선 상에 놓은 마케팅 탓이리라. 이어지는 내용 세계에서 유일하게 한국에서만 부모의 소득이 낮을수록 자녀들의 발길이 줄어든다는 충격적인 조사결과가 나왔다. ...(중략)... 또 한국인들은 돈은 가족에게 먼저 빌리는데 비해 정서적 도움은 친구나 동료들에게 주로 구하는 등 부모나 친족과의 관계가 매우 '도구적'인 것으로 나타났다. [연합뉴스] 세상이 미쳐돌아간지 오래지만, 이런 기사를 볼 때마다 가슴이 먹먹해진다. 가족이 서로 정서적인 도움을 주고받는 게 당연한 일일텐데, 집에서는 그러지 못하고 괜한 친구나 동료들에게 그러는 것은 나도 예외가 아니다. 반성하는 마음이 드는 찰나, 항상 일과 야근이 넘쳐나는 사회가 원망스럽다. 제발 인간적으로 살 수 있게 해달란 말야. 그러나 내가 일하는 공장의 삭막한 공기는 여전하다. 기간 : 2008년 5월 29일까지. 사유 : 주인장 납치. 기타 : 살아돌아올께요. 경향신문을 읽다가 다음 구절을 발견했다.노스트라다무스(1503~66)가 남긴 4행시는 두렵다. “금과 은 대신에/대량의 크레디트(CREDIT)가 넘치리라/그것은 거센 욕망을 부채질하고/부끄러운 마음을 장님으로 만든다.” [원문보기] 얼마 전 W은행에 갔더니 체크카드를 신용카드로 바꾸라고 권하더라. 하루하루 생활비에 쪼들리는 백수에게는 솔깃한 얘기. 재직증명서 같은 것 필요없냐고 했더니, 적금이 많이 쌓여서 괜찮다고 한다. 오해하지 마시라. 내 적금이 아니다. 아마 내 명의로 어머니께서 적금에 가입하신 듯. 아무튼 은행 직원이 설득력 있는 눈빛으로 신용카드의 혜택을 읊었지만, 결국 소심하게 일어났다. 일단 나 자신이 미덥지 않기도 하지만, 더 정확히는 신용카드가 두려웠기 때문이다. 신용카드는 나를 지름신으로 인도할 것이고, 나는 지를 것이고, 그리고... 음.. 월말이 되면, 혹은 술에서 깬 아침에, 나는 카드내역을 보면서 후회하겠지. 이것은 내 문제가 아니라, 전적으로 신용카드의 문제다. 암, 노스트라다무스도 그렇게 얘기했으니깐. ![]() 선배 기자들, 데스크들. 정말 처참한 줄 알고는 살자. 출처 : 마린블루스
이 꽃미남들이 내가 닮은 사람들이란다. (스미마센, 사토시쿤.)
![]() 허허허, 기분이 좋지만, 사실 더 닮은 4명의 얼굴을 삭제한 것이다. 가장 닮은 사람은 내가 모르는 중국인 여자(!) 배우...;; 그리고 2등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C.호날도...와 같이 뛰고 있는 박지성이었다....; 2달 동안 숨 죽이던 플레이오프에서 탈락한 이후, 이러고 하루를 보내고 있다. ㅜㅜ; * 이 프로그램을 처음 안 것은 달빛이야기님의 포스트에서. 그리고 이 프로그램을 해보고 싶으시다면 이리로. :: 지난번에 올렸다가 실수로 날라가서 다시 올리는 글. 김은중, 정조국, 두두, 심우연 부상. 박주영 차출.... 이렇듯 FC서울의 스트라이커들이 사라진 사이에, 이상협이 그 공백을 200% 메꾸고 있다. 비바 K리그 '주간 베스트 골'에 선정된 부산전 선제골도 그렇고, 이번 인천전에서 터트린 결승골도 위력적이었다. 이상협의 장점은 폭발적인 움직임과 탄력인데, 요즘 보면 슈팅도 무시무시하다. 게다가 언젠가부터 내 기억으로는 이상협이 득점하면 팀이 꼭 이긴다. ![]() 이상협, 히칼도 더불어 이날 히칼도의 활약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히칼도는 이날 수비에 내려오지 않고 공격적으로 움직였다. 아마 귀네슈 감독의 지시였겠지만, 결과적으로 히칼도는 평소보다 더 위력적이었다. 공격에 치중하다보니, 경기가 잘 안 풀릴 때 내려와서 볼을 갖고 올라가는 독점 플레이가 사라졌다. 히칼도의 유일한 약점이 사라지고, 공간을 가르는 패스가 연발되니, 안상현과 이상협의 움직임이 훨씬 수월했던 듯싶다. 히칼도도 이날 선제골 코너킥 어시스트를 기록했다. ![]() 박용호, 안상현, 이상협 이제 다음 마지막 라운드 대구전이 남아있다. 오는 14일 일요일에 열린다. 비기면 올라가지만, 이기는 것이 좋다. 어차피 영남에서 치르게 될 6강전을 생각하면, 대구를 이기는 것이 기분 좋다. FC서울의 마지막 두 라운드가 모두 승리로 이어지고, 더불어 나의 마지막 라운드도 잘 됐으면 좋겠다. 6분 쯤에 연영석 아저씨의 '간절히'가 나옵니다. 간절히 간절히 간절히 난 나는 오늘도 간절히 원하지~! 자료 찾으러 언론노조 홈피에 들어갔다가 우연히 48분짜리 PD수첩을 끝까지 보았다. 보는 내내 눈물이 주룩주룩 흘러내렸다. 전투력 상승 이백배다. 기업들한테 밥 얻어먹고 술 얻어먹고 골프만 치는 기자가 아니라, 까칠한 비판쟁이 기자도 있어야 하고, 정말정말정말 그렇게 되고 싶다. 학교 후배들이 집 근처로 왔다길래 술 한잔 사주러 나갔다. 다른 애들만 왔으면 가지 않았겠지만, ㅇㅊ이 서울로 올라왔다고 해서 거절할 수 없었다. 츄리닝을 입고 주섬주섬 나가 술을 마셨다. 이런저런 이야기. 자욱한 담배 연기. 원샷, 반샷, 홀짝샷. 한 12시 쯤 되었을까, 슬슬 가야겠다고 타이밍을 재고 있었다. 집에서 전화오기 전에 들어가고 싶었다. 독촉은 언제나 기분 나쁜 일이니깐. “아무도 우리를 좋아하지 않아. 아무도 우리를 좋아하지 않아. 아무도 우리를 좋아하지 않아. 그래도 상관없어. (No one likes us / No one likes us / No one likes us / We don't care.)" 잉글랜드 축구팀 밀월(Millwall FC) 팬들이 로드 스튜어트의 팝송 ‘Sailing'의 곡조에 맞춰 부르는 노래다. ‘어바웃 어 보이’의 작가 닉 혼비는 그의 책 ‘피버 피치’에서 이 노래에 딱 어울리는 주인공이 아스날(Arsenal FC)이라고 주장하지만, 적어도 K리그에서만큼은 FC서울이 이 노래의 주인공일 듯싶다. 얼마 전 FC서울과 수원삼성의 2군 경기에서 ‘반지의 제왕’ 안정환 선수가 관중석에 올라가 관중에게 항의(혹은 욕설)을 하다가 퇴장당하는 사건이 있었다. 국제적 스타의 돌출행동이다보니 많은 사람들의 관심이 쏠리는데, 대개 여론은 안정환 선수를 옹호하고 선수를 자극한 FC서울 서포터들을 비난하는 쪽으로 흐르는 것 같다. 그러나 문제는 FC서울 일부 서포터를 비난하는 과정에 허위 사실이 난무했다는 사실이다. 우선 사건 초기 문제가 되었던 안정환 선수 부인 이혜원 씨에 대한 욕설 얘기를 보자. 익명의 누리꾼들이 “경기장에서 직접 보고 왔다”면서 “이혜원 씨에 대해 입에 담을 수 없는 성적 욕설을 했다”고 했지만, 실제 그날 전 경기를 촬영한 영상에서는 이혜원 씨에 대한 말이 “쇼핑몰 잘 되나?” 한번뿐이다. 직접 봤다고 주장하는 누리꾼의 환청 혹은 날조인데, 날조이리라 추정된다. (물론 부인에 대한 성적 욕설이 없었다고, 서포터들이 잘 했다는 얘기는 아니다.) 게다가 그런 허위 사실을 기초로 특정인에 대한 인신공격이 난무하고 있다. 예컨대 FC서울 서포터즈 수호신의 행정간사를 맡고 있는 권○○ 씨의 경우 전화번호, 집 주소, 미니홈피 등이 모두 공개되어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없는 상태이다. 그런데 그녀가 집중적으로 비난을 받는 이유를 보면 너무 허무하다. 누리꾼들이 SBS뉴스에서 인터뷰한 여성을 그녀라고 잘못 지적한 것이다. 권 씨는 인터뷰 한 적도 없고, 모자이크 처리된 여성은 다른 사람이다. 말문이 막힐 따름이다. 원래 축구에서 “월드 스타가 2군 경기에서도 승리수당 2000만원 받니?”, “반지 세레모니 왜 안 하니” 등의 빈정거림은 크게 문제되지 않는 것이다. 그런 빈정거림은 경기장에서 관중을 쫓는 주범이라기보다, 옆에 앉은 같은 편 관중들을 피식거리게 만드는 양념 같은 역할을 해왔다. (물론 이번 사건처럼 상대 팀 선수를 흥분시키는 역할도 했다.) 수원삼성 서포터즈 ‘그랑 블루’ 등 몇몇 팀 서포터즈는 아예 “나가 뒈져라”라는 욕설을 수백 명이 크게 노래하지만, 이때까지 언론에서 이렇게 심각하게 문제 삼은 적이 없었다. 원래 축구라는 스포츠가 비도덕적 스포츠이다. 그렇다면 왜 작금의 이 사태가 크게 문제된 것일까? 일차적으로 안정환 선수라는 대스타가 슬럼프 상태에서 겪은 수모라는 성격이 크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부족하다. 만약 인기스타인 박주영 선수가 수원 삼성 서포터들에게 “너가 그러고도 축구천재냐?”라는 말을 듣고, 관중석을 올라간 모습을 상상해보자. 과연 지금처럼 관중 문화를 질타하는 것으로 끝날까? 모르긴 몰라도 박주영 선수의 인간성에 대한 질타가 더 클 것이다. 김병지 선수로 사람을 바꿔도 마찬가지 결과가 나온다. 원래 FC서울은 축구판의 공공의 적이기 때문이다. K리그의 악당 FC서울. 사람들은 원래 착한 편과 나쁜 편이 싸우는 세계를 욕망한다. K리그에서 FC서울 외에 과연 어느 팀이 악당이 될 수 있겠는가? (K리그 대개 연고를 이전한 팀들이지만) 최근에 연고를 옮겼고 대한민국 수도 서울에 위치하며 스타도 적당히 있다. 그렇기에 FC서울이 악당이 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게다가 아직 FC서울은 우승권 강팀이 아니니, 악당의 실패를 보고 싶은 대중의 욕망에 부합한다. 이런 몇 가지 함수관계를 배경으로 사실이 왜곡되고 과장되면서 안정환 구하기가 FC서울 서포터즈 죽이기로 발전하는 것이 안정환 사건의 진행방향이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앞뒤 다 절단하고 도덕주의로 무장한 채 영웅 감싸기에 나서는 누리꾼들을 보면 참 한심스럽다. 황우석 지키려고 ‘PD수첩’ 폭격하던 것이 삽질로 드러난 지 얼마 되었다고, 심형래에 이어 안정환까지 영웅을 지키기 위해서는 막말을 서슴지 않는 그들. 이제는 지겹고 안쓰러울 정도다. 제발 흥분하지 말고 천천히 지켜보는 버릇 좀 길러라. p.s. 스포츠조선의 최만식 기자는 이번에 전 국민을 낚아서 한 2~3주 동안 편하게 기사 쓰는 데 성공한 듯합니다. 원래 축구 기사는 안정환, 차범근, 김호 감독 셋 중 하나만 빠져도 못 쓰는 분인데, 안정환으로 3주짜리 사건 하나 끊으셨네요. 그랑블루는 수호신에 대해 직접 보복하겠다고 발표했고, 이제 서포터들 패싸움 볼만하겠습니다. 그렇게 기사 쓰면 살림살이 많이 나아지십니까? ![]() 영화가 처음 생겼을 때 영화관은 어떤 분위기였을까? 아마도 지금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을 거다. 우리나라의 경우 영화는 연쇄극이라 불리는 연극의 일부분으로 시작됐다. 연극 공연 중 등장인물들이 쫓고 쫓기며 무대 한 켠으로 사라진 뒤, 스크린이 무대에 내려와서 등장인물들의 자동차 추격신 등을 보여주는 방식이었다. 스크린이 내려오면 관객들은 "제법 볼 만하다"며 시끄럽게 환호했다고 전해진다. 서양의 경우는 보다 노골적으로 왁자지껄했다. 초기 영화는 '보드빌'이라 불리는 쇼의 한 부분이었다. 요들송부터 마술쇼까지 맥락없이 전개된 쇼 프로그램에서 영화는 하이라이트를 장식하는 '과학(기술)적 마술 쇼'였다. 알랭 레네의 2003년작 <입술은 안돼요>는 이런 초기 영화관의 분위기와 맞닿아있다. 누벨바그 시기 주역이었던 할아버지 감독이지만, <입술은 안돼요>는 심오한 내용이라기보다 영화를 갖고 노는 느낌이다. 오프닝 크레딧부터 심상치 않다. 18세기 유럽에서 유행했다는 그림자 연극 방식으로 소개한다. 목소리는 쇼 진행자의 목소리. "여자배우는 사빈느 아제마, 이사벨 낭티, 오드리 토투, 남자배우는 삐에르 아르디티, 랑베르 윌슨, 자릴 레스페르", 이런 식이다. 영화는 시종 일관 쇼의 느낌을 유지한다. 1925년 경 프랑스 귀족들이 서로 혼인관계 외 애인을 사귀어 밀실에서 사랑을 나누려는 욕망이 발랄하게 엉킨다. 이 엉킴을 노래가 좀 되는 프랑스 유명배우들이 신나게 노래한다. 정신 없이 지저귀는 코러스들도 분위기를 띄우는데 한 몫 한다. 말 그래도 '쇼'를 한다. 원래 뮤지컬 영화라는 장르 자체가 쇼의 분위기지만, 이 영화는 노래를 부르는 장면 이외에도 적극적으로 보드빌 쇼의 느낌을 전달한다. 예컨대 등장인물간의 대화 중 끊임없이 터져나오는 방백은 영화적인 것보다는 무대적인 것이 가깝다. 게다가 인물들이 방이나 집에서 나갈 때 사용된 디졸브(서서히 사라지기 기법)도 노골적이다. 멜리에스가 그랬던 것처럼 마술의 느낌을 살리기 위함이다. 이런 특이한 표현 방식은 초반부에서 영화에 몰입하는 것을 방해하지만, 중후반으로 가면서 익숙해지면 영화를 설득력 있게 만든다. 첫 키스 장면에서 허공으로 붕 떠오르는 장면은, 전형적인 마술 장면인데도 유치하지 않다. 오히려 그녀의 행복한 마음이 날 것 그대로 느껴진다. 마지막에 모든 등장인물이 모여 소동을 빚다가 마술처럼 해결되는 장면도 오버스럽지 않다. 영화 전반에 흐른 마술적 분위기 덕이다. 피곤한 현실 속에서 행복한 마음에 푹 빠져보고 싶은 사람들에게 추천한다. 비판력을 내려 놓고 볼 수록 행복하다. 요즘은 필름포럼(구 허리우드 극장)과 시너스 이수에서만 상영한다. 필름포럼에서 영화를 보거든 꼭 낙원상가 지하 시장의 1500원 짜리 소면을 먹는 센스도 잊지 마시길! p.s. '입술은 안돼요'라는 진부한 제목이 혹시 눈에 거슬리더라도 걱정 마시길. 설마 오드리 토투는 엄앵란 씨가 아니고. 알랭 레네도 한국 남성 감독이 아니다. ![]() 이 역사적 갈림길에서 저는 민중의 충성에 제 생명으로 답하겠습니다. 그리고 저는 여러분께 말하겠습니다. 우리가 수천, 수만 칠레인들의 소중한 양심에 심어 놓은 씨앗들은 일격에 베어 쓰러뜨릴 수 있는게 아님을 확신한다고. 저들은 힘을 가졌습니다. 저들은 우릴 종복으로 만들 수 있습니다. 하지만 어떤 범죄 행위로도, 무력으로도 사회 진보를 막을 수는 없습니다. 역사는 우리의 것입니다. 그리고 역사를 만드는 건 민중입니다. 이 나라의 노동자 여러분, 저는 여러분이 지켜왔던 그 충성, 여러분이 이사람, 다만 정의를 향한 크나큰 열망의 통역자였고 헌법의 존중을 맹세했으며 이것을 지킨 한 사람에게 보여준 그 신뢰에 감사드리고자 합니다. 이 마지막 순간에, 제가 여러분께 드릴 수 있는 마지막 연설을 통해 저는 여러분이 이 교훈을 얻길 바랍니다. 국내의 반동 세력과 결탁한 외국 자본과 제국주의가, 군대가 자신의 통을-군 출신이면서도 그 희생양이 된 분들, 즉 슈나이더 장군이 가르쳐 줬고 아라야 사령관이 다시 확인을 그 전통을-깨버리도록 분위기를 조성했다는 것 말입니다. 이제 오늘 저들 반동 세력은 자신들의 이윤과 특권을 끈질기게 지키기 위해 외세의 힘을 빌려 권력을 탈환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저는 여러분, 누구보다도 먼저 이 땅의 겸손한 여성들, 우리를 믿어 준 여성 농민들, 어린이들에게 쏟은 우리의 관심을 알아준 어머니들에게 말씀드립니다. 저는 또한 이 나라의 참된 전문가들에게 자본주주의 사회를 옹호하는 전문가 단체, 기득권 단체가 저지르는 방해 선동에 맞서 줄기차게 활동한 애국적 전문가들에게 말씀드립니다. 저는 청년들에게, 함께 노래하고 이 투쟁에 자신들의 행복과 영혼을 바친 분들에게 말씀드립니다. 저는 이제 몇 시간 만에 이 나라를 장악한 파시즘에게 박해받을 칠레인, 노동자, 농민, 지식인들에게 말씀드립니다. 암살 테러 속에서도 충성을 맹세했던 자들의 침묵에 맞서, 다리를 폭발하고 철로를 절단하며 석유 파이프와 가스 파이프를 파괴하고 있는 여러분에게 말씀드립니다. 저들은 위태로운 상황에 있습니다. 역사가 저들을 심판할 겁니다. 라디오 마가야네스는 곧 끊어질 게 분명합니다. 그러면 제 차분한 목소리도 더 이상 여러분에게 닿지 않겠지요. 하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습니다. 여러분은 계속 듣게 될 테니까요. 저는 항상 여러분과 함께 있을 겁니다. 적어도 당당한 애국자의 기억 속에 함께 할 겁니다. 민중은 스스로를 지켜야 하는 법이지만, 스스로를 희생하지는 마십시오. 민중은 굴종과 박해를 허용해선 안되는 법이지만, 스스로를 자학할 필요도 없습니다. 이 나라의 노동자 여러분, 저는 칠레와 그 운명을 믿습니다. 반역자들이 우리에게 강요하려는 이 암울하고 가혹한 순간을 딛고 일어서 또 다른 사람들이 전진할 겁니다. 이걸 잊지 마십시오. 자유로운 인간이 활보할, 더 나은 사회를 향한 크나큰 길을 열어젖힐 일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걸. 칠레 만세! 민중 만세! 노동자 만세! 이게 저의 마지막 말입니다. 저는 제 희생이 헛되지 않으리란 것을 확신합니다. 결국에는 제가 대역죄인과 비겁자 그리고 반역자를 심판할 도덕적 교훈이 될 것임을 확신합니다. - 장석준 엮음, 『혁명을 꿈꾼 시대』, 살림출판사, 2007, p.128-130.
![]() 1973년 9월 11일 대통령궁에서 '대통령 동지' 아옌데가 칠레 국민에게 했던 마지막 방송이다. 몇 시간 뒤에 그는 또 다른 동지 카스트로가 선물한 기관총을 들고 쿠데타군과 싸우다가 '전사'했다. 꿈꾸는 자라면, 이 글을 읽고 어찌 울지 않을 수 있단 말인가. 어제 아트레온에서 영화를 보고, 신촌에 새로 연 서점에 갔다가 <도쿄대생은 바보가 되었는가> (다치바나 다카시, 청어람미디어, 2007) 이란 책을 충동구매했다. 오늘 오후 내내 집 근처 커피숍에서 읽었는데, 우리나라 대학에도 비슷한 문제를 지적한지라 여러모로 생각할 구석이 많다. 그 중 생각나는 에피소드는, 저자가 도쿄대 교양학부에서 강의를 하며 겪은 일화다. 기말시험으로 "스스로 자유롭게 논제를 설정하고 자유롭게 논하라"는 문제를 줬는데, 대다수 학생들이 저자가 강의한 환경 문제를 논제로 설정하여 저자가 강의한 내용을 배껴 적었다고 한다. 저자는 "강의 내용에서 벗어나 어떤 문제를 다루어도 상관없다고 미리 예고를 했는데도 왜 한결같이 환경 문제만을 주제로 선택한 것일까?"라는 질문을 던진다. 저자의 대답은 다음과 같다. 결국 그들은 스스로 주제를 설정할 자유가 주어졌음에도 불구하고, 그 자유를 활용하지 못하고 일반 시험에서 교수가 출제하는 것과 같은 주제를 스스로 자신에게 부과한 것이다. 그리고 일반적인 시험처럼 교수가 강의에서 설명한 내용을 그대로 답습하는 길을 선택함으로써 주어진 자유를 스스로 포기했다. 마치 형무소의 자물쇠를 벗기고 죄수들에게 '이제 자유로운 몸이니까 가고 싶은 곳으로 가라'고 말했는데도, 대부분의 죄수들이 감옥에 남기로 결정한 것과 같은 태도이다. 문득 지난 학기 수업들이 생각났다. 수업을 원채 잘 안들어가서 평균은 별로 좋지 않았지만, A가 3개 C가 3개라는 초유의 양극화 경향이 희한했다. 그 중 잘 안나온 과목들을 살펴보면 (원채 단답형이었던 '일본의 문화와 예술'을 제외하면) 모두 괜히 주눅들어 선생이 설명해놓은 내용 안에서만 적으려 애쓴 과목들이다. (수업도 잘 안듣고서!!) 오히려 자유롭게 내 입장대로 밀어붙인 '한국 영화의 이해', '정치사회학', '중국의 최근 정황' 등은 항상 예상 밖의 성적이었다. 그렇다면 최근의 연속되는 불합격들도 내가 내 글을 스스로 '언론사 취직 시험'에 한정시켜 쓴 결과가 아닐까? 책에 나온 내용 중 또 다른 인상적인 내용은 저자의 도쿄대 불문과 재학시절에 대한 회상이다. 불문과에는 특히 수업에 참석하지 않는 학생이 많았다. 나도 그런 학생 중에 한 명이었지만,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불문과에는 문학청년, 영화청년 등 예술가를 꿈꾸는 학생들이 다른 과보다 많았기 때문이다. 그들은 프랑스 문학을 연구하기 위해 불문과에 진학한 것이 아니었다...(한참 중략) 나의 치기는 도대체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 물론 불문과도 항상 치기 어린 학생들만 있는 것은 아니어서, 저자의 동기 중 졸업 성적이 가장 뛰어났던 학생은, 졸업논문을 쓸 때 주임 교수를 찾아가 주제를 정해달라고 해서 웃음거리가 됐다고 한다. 혹시 지금 내가 그 학생처럼 굴고 있는 것은 아닐까? 공부 흉내가 아닌 진짜 공부를 해야 할 시간이다. 시험이라는 감옥에 스스로를 가두지 말자.
참 집요하시네요. 하루 방문자가 10명도 되지 않는 블로그 와서 제 글과는 상관없는 댓글을 다시니 참 한가하신가봅니다.
지금 하루 이틀도 아니고 계속 오전 중에 제 블로그 더럽히시는데, 저 지금 참을성 임계치 도달했습니다. 제가 쓴 글에 댓글을 다시면, 적어도 제 글의 어떤 부분을 보고 대화하는 댓글이어야지, 이렇게 맥락도 없이 알바짓 하실렵니까? 입장이 다른 건 상관없는데, 이런 식의 문자공해를 쏟아내시는 것은 참을 수 없습니다. (나름대로 텍스트 '갤러리'라고요!) 정말 피자몰, 푸마, 상암 홈에버 즐겨 찾았는데, 점점 더 싫어지는 군요. 덕분에 평생 불매운동 성공할 것 같습니다. 지난 주말에 피자 딱 한조각만 먹고 싶었는데, 피자몰 보니깐 식욕도 떨어지더군요. 네네, 감사합니다. 다이어트에도 도움을 주시는군요. 마침 국민일보 기사에서 이랜드 그룹이 전사원에게 알바짓을 지시했다고 하네요? 이랜드는 알바짓도 인사고과에 반영하나보죠? 제 블로그에서 알바짓 하시면 글 다 삭제하니깐 별로 가산점 없을 것입니다. "한편 이랜드 그룹이 사측에 유리한 여론을 조성하기 위해 사원들에게 회사의 파업관련 기사에 긍정적인 댓글을 달라고 지시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랜드 그룹에 근무 중인 김모씨는 "지난주초 회사 본부에서 전체 직원에게 회사와 관련해 인터넷에 올라오는 기사 내용에 긍정적인 반응을 올리도록 독려하는 내용이 포함된 전자우편을 받았다"고 밝혔다." - 국민일보 기사중에서 앞으로도 계속 이딴 알바짓 하시면 다 삭제하겠습니다. 계속 이러시면 사이버 폭력으로 고소할 겁니다. A Theory of Genres in Early Films Tom Gunning 나의 에세이 'The non-continuous style of early film'에서, 나는 초기영화의 변칙이라 할 수 있는 것들을 개관했다. 그 요소들은 이후 영화제작에 대한 지배적 양식의 관점― 우리 모두 (신중하고 유보적으로) 연속적인 고전 양식이라 부르는 ― 에 따라 비정상적으로 보였다. 부분적으로 Noël Burch의 작업과 이후 아방가르드의 ‘비정상적’ 영화제작 양식에 대한 개인적 관점에 힘입어, 나는 이런 예외들이 매치커팅과 내재적 통일성의 이후 확립된 이상을 암중모색하는 원시적인 실수라고 보지 않고, 이후 지배적 영화에서 찾아볼 수 없는 영화 내러티브의 다른 방향의 징후 내지는 메이저 영화 산업에서 취하지 않은 길이라 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느꼈다. 내 에세이는 준비 단계로 밝혔고, 거기서 나는 내가 조사한 예외들이 사실상 초기 영화들의 유기적이고 통일된 양식을 형성하는 것으로 파악될 수 있는지에 대한 나의 불확실성을 암시했다. 이제 내가 보기에, 내가 다룬 요소들의 중요성은 내러티브에 대한 다른 접근을 그리는데 있다기보다, 차라리 고전 양식의 발전이 복잡하고 변증법적이라는 점을 드러내는데 있다. 초기영화의 비연속적인 요소는 영화사의 비정상적인 루트에 대한 이정표라기보다, 차라리 맹점의 연속이 되는 영화사 자체에 구두점을 찍는 것이다. 영화를 연속성의 이상에 다가가는 것으로 바라보는 전통적인 역사가들은 이 예외들을 단지 실수거나 실패한 시도로 바라보지만, 최근에 이론가들에게는 해체적인 일탈로서 의미있는 것이다. 그러나 사실 영화 담론에서 이런 비판적인 지점들이 정확히 드러내는 것은, 영화사가 (종종 불특정한) 고전적 연속성의 이상을 향한 일관되거나 비일관된 정적인 모델로 인식할 수 없다는 점이다. ( ) 그렇다면 초기 영화들은 고전적 연속성의 이후 양식이 자연적으로 발생하는 순간이나, 부르주아 문화와 도덕의 독점적 대표자로 영화가 배신하기 이전의 인류타락이전의 순간으로 파악될 필요가 없다. 초기 영화들은 영화사에 다음을 위한 연구들을 과제로 안겨준다. 영화의 첫 수십 년 동안 내러티브 형태에서 일어난 변화를 이해하는 방법과, 초기 영화들이 이후의 관습과 가진 차이를 단지 (사실상 현재도 나타나지 않은) 연속성의 모델과 단절된 관계로 정의하지 않고 이해하는 방법 말이다. 반드시 이해해야 하는 것은 정확히 이런 변화들에 수반된 역사다. 이 역사를 이해하는 것은, 궁극적으로 구조주의와 기호학이 영화 연구에 가져온 분석틀로 모든 현존 필름을 자세히 비교하여 연구하는 것뿐만 아니라, 이 영화들을 경제적 상품으로 이해하는 것을 포함한다. 초기 영화의 (넓은 의미에서) 생산과 소비의 수단은 이제 겨우 설명되고 연구되는 중이다. 영화의 진짜 역사적인 파악은, 금융조달 방법과 영화 생산의 현실적 방법, 상영 관습, 관객의 수용 방식 등을 모두 기술해야 가능하다. 의미체계(signifing systems)와 경제적 상품으로서 영화를 분석하는 수단이 다르다고 하더라도, 그것들은 결코 서로 배타적이거나 궁극적으로 완전히 독립적인 것은 아니다. 초기 영화의 의미 과정을 상영과 생간에 포함된 전략과 연결시켜 이해했다는 점에서 Charles Musser의 최근 작업들을 끄집어내야 한다. 상품으로서의 영화사가 역사상 영화의 형태를 완전히 이해하는데 필수적이라 하더라도, 그것은 영화에 역사적으로 접근하는 유일한 방법은 아닐 것이다. 우리는 스스로가 역사적 특질을 갖고 있는 영화들에 대한 연구 방법을 개발해야 한다. 체계로서 영화 텍스트를 연구하는 것은 정밀한 공시적 접근을 촉진했다. 확실히 공시적 영화연구는 영화에 대한 구조적 접근의 기초가 되는 작업이다. 그러나 이제는 역사 안에서 영화체계를 통시적으로 비교할 때이다. 초기 영화에 대한 통시적 접근을 풍부하게 하는 특정한 방법이 있다면, 그것은 영화장르 연구이다. 영화 장르의 최근 연구에는 명백히 두 가지 한계가 있다. 첫째는 영화의 표현보다는 내용의 측면에만 배타적인 관심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즉, 기표보다 기의에만 관심이 있다.) 이 한계에 대한 추후에 논하도록 한다. 다른 한계는 최근의 진지한 영화 연구의 많은 경우와 같이 역사로부터 단절되어 있다는 점이다. 장르를 공시적으로 기술하는 것이 장르의 통시적 연구를 앞설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이는 아마 놀랄 일은 아니다. 물론 갱스터나 웨스턴의 전문 역사에 내용을 채우며 특정 장르의 변화를 살핀 장르연구도 있었지만, 영화사 일반에 대한 이들 장르의 관계로까지 확대되진 않았다. 장르의 개념이 장르 스스로 역사적 변화의 매개체였던 곳(러시아 형식주의자의 장르 이론)에 존재했기 때문에, 이는 놀랄 일이다. (?) 역사적 맥락에서 문학 텍스트를 제거했다는 비판이 있지만, 러시아 형식주의자들이 텍스트 분석에 역사적 차원을 도입했다는 것은 장르이론에서 사실이다. 형식주의자들이 예술을 ‘낯설게 하기’(defamiliarization)로 이해한 것은 예술형태 역사에 지속적인 변화와 혁신의 필요성을 가져왔다. Tynyanov가 얘기했듯, ‘어떤 문학의 계승도 무엇보다 낡은 가치를 파괴하고 새 요소를 재구성하는 투쟁이다.’ 이 관점에서는 문학 장르는 생성, 신성화, 최후의 쇠퇴를 순환하는, 우월적 지위를 향한 경쟁적 장르와의 역동적 경쟁이 된다. 장르가 인기를 얻으면 그것은 낯설게 하기의 역할을 상실하여, 불가피하게 쇠퇴하며, 결국에 새 형태에 길을 내준다. 확실히 ‘새 형태의 변증법적 자기 창조’의 일부인 장르에 대한 역동적 관점은 영화사의 모델로는 한계가 있다. 이것은 양식의 계승에 대한 역동적 관점을 제공하지만, 장르의 성쇠에 영향을 준 다른 역사적 사건이나 상품으로서 영화를 이해하는데 필수적인 사실들에 대해 접근하는데 있어 ‘자기 창조’라는 개념은 한계다. 형식주의자들 스스로도 이 접근의 한계를 알았지만, Eichenbaum은 이를 ‘복잡한 조건의 연속에 둘러싸인 진화에 대한 일반 개요’라 기술했다. 그러나 이들 ‘복잡한 조건’의 고려에 의한 완성이 필요하다 치더라도, 이 개념에 따르면 영화 장르는 순전히 역사적인 사건으로 파악될 뿐이다. Hans Robert Jauss를 인용하자면, 이로부터 영화 장르의 역사적 연속에 대한 개념은 ‘다음 작업이 이전 작업이 남긴 형식적이고 도덕적인 문제를 해결하고, 이번엔 새로운 문제를 남기는’ 곳에서만 생긴다. 우리는 이제 최근 영화분석에서 장르개념이 가진 한계로부터 내용의 측면으로 돌아올 수 있다. 이것이 이후의 영화에 접근하는데 유용한 몇몇 이유는 있지만 (이후의 영화에서 장르 개념은 기본적으로 산업에서 생산 및 배급 정책에 따라 선택된 것), 그것은 또한 장르에 대해 영화의 사실상 형태의 측면으로 접근하는 것을 막는다. 러시아 형식주의자들은 그들의 영화에서 다시 우리를 돕는데, 바로 ‘시네 장르’(cine-genres)라는 개념을 갖고서다. 20년대 저작에서 형식주의자들은, 영화가 문학 및 희곡에 ‘기생적으로’ 대신하는 것과 대비되는 의미에서 독특하게 영화적인 장르를 설립하고 싶었다. 그러나 우리의 목적에서 ‘시네 장르’ 개념의 가장 중요한 측면은, 장르를 내용에 관해서가 아닌 (story) 영화의 특정 형식장치를 통한 표현으로 (plot) 정의하려 했다는 점이다. A. Piotrovskij는 다음과 같이 적었다. <인용> 장르에 대한 이런 접근은 초기 영화를 다루는데 특히 유용하다. 이것은 부분적으로 추적영화나 속임수영화처럼 초기영화에서 논의된 ‘장르’들이 영화적 공간과 시간에 대한 접근을 통해 구별지어졌기 때문이다. 역사적 연속 속에서 초기영화 장르를 위치짓는 방식도 똑같이 중요한데, 이전의 영화장르가 영화 제작업자의 생산을 지배함으로써 계승되었기 때문이다. 물론 이런 계승의 패턴이 절대적이었던 것은 아니다. Shklovsky가 적었듯, ‘정복된 계통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어서, 존재를 멈추지는 않는다. 단지 기세만 꺾인 것이어서, 수면상태로 놓여 다시 왕좌를 위협하는 자가 되어 일어날 수 있다.’ 확실히 경쟁하는 ‘시네 장르’들이 그 시기에 생겨났다. 그러나 다른 장르들에 의한 생산 지배에는 확실한 유형이 있었다. 이것은 새 장르의 등장과 지배 그리고 영화산업에서 쇠퇴를 나타냈다. ( ???? ) 나는 초기 영화의 장르 이론을 구상하는 준비로서, 이 초기 시기(대략 1895년~1910년) 동안 ‘시네 장르’들을 4가지로 설명하려 한다. 확실히 이들 장르에 대한 내 논의는 이 시기에 존재한 모든 장르를 포함하진 못한다. 그러나 이것은 다른 장르들이 통합될 수 있는 뼈대를 제공할 것이다. (????) 장르에 대한 나의 정의는 시간과 공간에 관하여 숏 사이의 분절에 대한 관계에 주로 의존한다. 첫 번째 장르는 한 숏 안에 완료되는 내러티브로 이루어져 있다. 두 번째 장르는 내가 비연속성이라 칭하는 것인데, 숏 사이의 컷에 의한 단절이 영화의 이야기 수준의 단절을 표현하는데 쓰이는, 복수 숏에서의 내러티브로 구성된다. 세 번째 장르는 내가 연속성의 장르라 말하는 것인데, 이는 컷에 의한 불연속성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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