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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이란 한 국가에 대해 설명할 때, 주로 맞닿게 되는 당혹한 점은 자본주의와 공산주의 두 체제 중 무엇으로 분류해야 하느냐이다. 중국 내 공산당의 일방적인 영향력이나 삼권분립이 제대로 확립되어 있지 않다는 점에서는 공산주의로 분류하는 것이 옳지만, 또 한편으로는 사유재산이 존재하고 개방무역이 매우 활발하게 존재한다는 점에서는 자본주의적 속성을 갖고 있다. 국제 정치 무대에서 중국은 미국의 일방주의에 대항하는 국가로 보이지만, 지아장커(賈樟柯)와 같은 중국 6세대 감독들의 영화에 비친 중국 사회는 6, 70년대 한국의 모습과 흡사하다. 이 때문에 한국에서 중국을 논하는 방식은 매우 혼란스럽다. 각종 미디어들은 정치면에서는 홍위병, 천안문 사태 폭력 진압, 인터넷 검열, 지도자 서열 문제 등의 이미지로 공산주의 측면을 부각시키고, 경제면에서는 폭발적인 경제성장, 대외 수출, 미국의 주요 채권국 등을 강조하며 자본주의 국가와 다름없이 서술하고 있다. 한국 사회 좌파들의 관점도 중국을 사회주의 국가로 보는 입장에서, 국가자본주의 또는 개발독재 형태의 국가로 바라보는 관점까지 혼란스럽게 얽혀있다. 이 같이 한국에서 중국을 바라보는 관점은 모순이 가득한 자기분열 양상을 보여준다. 중국에 접근하는 새로운 방식 마크 블레처가 쓴 『반조류의 중국』은 이 같은 혼란이 외부의 입장으로만 중국을 바라보아서 생긴 오류라고 지적한다. 즉, 1950년대 중반 이후 공산주의 국가들은 각자 차이와 갈등이 명백하게 나타났는데, 그 점을 무시하고 단일한 유형의 공산주의라고 보는 것은 냉전체제의 결과라는 것이다. 따라서 그가 제시하는 연구 방법의 대안은 내재적 접근의 을 강화. 즉, 중국을 그 자체의 세계로 파악하고 그 자체의 언어로 이해하려는 중국학(Sinology)적 관점을 도입한 것이다. 이런 접근을 할 때만, 대약진운동이나 문화대혁명이 집단적 정신분열증이 아닌, 중국 지도자들과 인민들이 특수한 상황에서 목표에 맞게 시도한 결과라고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저자는 기존 사회과학의 비교사회학적 방법이 가진 중요성도 잊지 않는다. 내재적으로 볼 때 당연하고 사회과학적 함의가 없는 사실도, 외부에서 비교적 관점으로 접근하면 중요한 연구대상이 될 수 있다. 예컨대 문화대혁명이 참여자들에게는 이념에 의해 자주적으로 선택한 행위 양태가, 비교사회학적 관점에서 분석할 때 그들의 특수한 배경에 의한 결과일 수 있다. 따라서 마크 블레처는 행위자들에 대한 내재적 관점에 사회과학자로서의 외재적 입장을 결합하는 방식으로 서술한다. 이 같은 방식으로 중국을 바라보는데 특정한 방식에 갇힌 오류를 최소화하려는 것이다. 양면적 접근으로 기각되는 서방의 관점들 내재적 관점과 외재적 관점의 병용은 기존 서방에서 중국에 대해 접근하던 관점들 중 상당수에 대해 의문을 던지게 만든다. 우선, 중국이 소련과 같은 동구 사회주의적 방식에 의해 혁명을 이뤘다고 보는 관점에 대해 비판적이다. (1장) 오히려 중국 사회의 특수성에 대한 알맞은 대응이 혁명을 성공으로 이끌었다는 것이다. 도시 봉기에 집착하는 교조주의가 주를 이뤘던 1920년대 중국 공산당은 실패를 맞이한 반면, 옌안 시기에는 온건하면서도 대중들과 더욱 밀접한 노선을 통해 지지를 확보한 것이 그 근거이다. 그리고 이런 차이는 우발적이거나 의식적으로 생긴 것이 아니라, 장시소비에트 시기와 대장정의 경험이 만든 것이다. 저자의 이런 접근은 중국 혁명을 단순히 맑스-레닌주의 교리에 충실한 공산주의 혁명으로 파악한 서방의 관점을 기각한다. 둘째, 문화대혁명을 ‘두 노선간의 투쟁’으로 단순화하여 분석하는 시각을 경계한다. (2장) 문혁이 평온한 상태에서 생긴 노선 투쟁은 아니라는 것이다. 오히려 문혁의 원인은 대약진운동 직후 대대적인 긴축정책에서 전면화된 사회경제적 분열들이었다. 따라서 초기 논쟁에 참여한 두 지도자인 모택동과 등소평의 대립은 고정적인 것이 아니라, 다소 유동적인 것이었다. 특히 모택동은 66년 “국무원을 포격하라”는 자보에서 나타나는 급진적 모습과 67년 무정부주의에 반대하여 혁명위원회 전환을 주장하는 중도파적 모습을 둘 다 보여준다. 이는 모택동이 변덕스러운 독재자여서가 아니라, 문혁의 세세한 흐름에서 이루어진 판단들에 기인한 것이다. 저자의 이런 관점은 ‘급진 대 온건’ 또는 ‘카리스마적 권위 대 엘리트’라는 이분법적 문혁 분석을 넘어선다. 셋째, 천안문 사태를 단순히 중국의 정치적 억압에 대한 민주주의적 저항으로 보는 서방의 관점에 대해 다른 해석을 내놓는다. (3장) 천안문 시위의 원인은 단순히 정치적 억압뿐만이 아니라, 1989년 당시 증대되던 사회경제적 불안도 크게 작용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오히려 천안문 사태가 정치개혁을 경제개혁과 병행하던 등소평 초기 10년의 개혁조치를 ‘시장스탈린주의’로 변화시켰다고 분석한다. 특히 ‘시장스탈린주의’로의 변화는 단순히 정치적 권위주의의 확립만을 의미하지 않고, 경제적 개혁개방의 가속화도 포함하는데, 이는 과거 추진된 경제자유화가 정치적인 측면에서 추진되어 속도가 느렸기 때문이다. 이같이 『반조류의 중국』은 중국 혁명, 문화대혁명, 개혁개방 시기의 중국 정부에 대해 양면적 접근을 통한 서방과 다른 입장을 내놓는다. 중요한 각기 시기마다 기존 역사와 국제 흐름에 대항한 것이 오늘날 중국을 형성한 원동력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반조류의 중국』의 영어 원제는 『China Against the Tides : Restructuring Though Revolution, Radicalism and Reform』이다. 『반조류의 중국』 접근 방식의 의의와 한계 내재적 관점을 강화하여 접근한 블레처는 중국에 대해 보다 풍부한 해석을 내린다. 행위자들이 내재적으로 어떤 조건과 목표에 반응하여 움직인 것인지를 명확히 설명하고, 그에 따라 현대 중국이라는 커다란 역사가 흘러온 맥락을 짚어낸다. 기존 서방세계의 해석 ― 맑스레닌주의 혁명을 이루었다가, 집단적 광기어린 문혁을 겪고, 공산당 일당 독재에서 개혁개방을 통해 경제적으로 성장했다는 담론 ― 이 중국에 대해 이질감과 두려움만 주는 반면, 블레처의 설명에 따르면 모두 이해 가능한 사건들이 된다. 또한 그의 설명은 보다 세밀하다. 예컨대 사회를 설명한 5장에 ‘성(性)’ 부분이 그러하다. 외부적 관점에서 볼 때 중국 여성들의 지위는 “서양보다 낮다”는 서술로 끝나기 쉬운데, 『반조류의 중국』에서는 역사적인 접근을 통해 중국 공산주의가 여성 지위 향상에 미친 영향을 서술하였다. 그렇다고 무조건 공적 발언과 제도에만 초점을 맞추어 칭찬한 것은 아니다. 1950년 혼인법 시행에도 불구하고 남은 관례에 대한 지적이나, 형식적인 교육기회 확대에도 불구하고 고등교육으로 갈수록 낮아지는 여성 교육에 대한 지적이 그러하다. 또한 사회개혁에 무관심했던 등소평 시기의 시장정책이 오히려 중국 여성의 지위를 악화시킨 점에 대해서도 세밀히 기술했다. 양면적 접근이 성급한 결론을 지양하여 보다 세밀한 서술을 가능케했다는 점에서, 이를 세밀한 접근이라 불러도 무방하겠다. 그러나 이러한 세밀한 서술 방식은 중국 사회의 총체적 개념화에서는 약한 모습을 보여준다. 단적으로 저자는 현재 중국의 정치경제 체제를 ‘시장스탈린주의’라고 규정하고 있지만,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불분명하다. 저자 자신이 지적하듯이 1930년대 소련에서 진행된 숙청 작업은 현재 중국에서 나타나지 않는다. 중국은 사회 통제나 적대세력 탄압 등에 있어서 보다 온화한 방식을 취하고 있다. 레닌주의적 일당독재, 자율적 정치조직에 대한 거부, 경제 성장을 위한 정치억압이라는 유사성에도 불구하고, 현재 중국의 모습과 스탈린 시기 소련의 모습은 전혀 다르다. 그리고 이 차이점은 책의 곳곳에 세부적인 서술로 이미 드러난다. 이렇듯 추상적인 개념화에 대해 『반조류의 중국』이 취약한 것은, 중국 사회에 대한 사회과학적 개념화에 있어 과도하게 신중한 모습을 보였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중국은 아주 특수한 역사적 맥락에 위치하여, 현재도 그 변화가 진행중이긴 하다. 그러나 1990년대 이후 20년 가까이 일관된 정치경제적 방향을 유지해온 중국에 대해 단순히 세부적인 서술과 ‘시장스탈린주의’라는 부적절한 비유를 사용한 것은 너무나도 아쉬운 점이다. 보다 적극적인 비교연구를 통해 현재 중국 사회에 대해 일정정도 개념화하였다면 좋았을 것이라 생각된다. 이 글과 관련있는 글을 자동검색한 결과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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