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방샤방 문화평론을 쓰고 싶은 사건기자 -_-;;;
by H군
카테고리
메모장
총학생회장'님'

얼마전 학교를 지나가다가 총학생회가 만든 홍보물을 보았다. 지난해 선거 때 내밀었던 공약들을 점검하고 2학기 행사를 알리는 홍보물이었다. 졸업생 신분이었지만 유심히 읽었다. 이번 총학생회는 이른바 '비운동권'이면서도 "총여학생회를 없애겠다"는 식의 조류적 행태를 하지 않았고, 오히려 촛불시위에 가장 열심히 참여하는 등 새로운 '비운동권'의 모습을 보였다.

몇 페이지를 넘겼을까. 순간 눈이 찌푸려졌다. '○○○ 총학생회장님' '○○○ 부총학생회장님'이란 표현이 난무했다. 내가 대학교 새내기이던 9년 전 토해버릴 것 같던 모습들, 과거 한총련이나 전학협 등 학생운동 거대 정파들의 행태과 다를 바 없었다. "친구처럼 믿음 있고 친근함이 묻어나는 학생회" "연인처럼 함께 하고 싶은 학생회"를 만들겠다던 '비운동권'이 왜 이렇게 되었을까.

사실, 생각해보면 이런 행태는 무엇보다 빨리 자기복제 되어 왔다. 운동권이 망하고, 조직이 사라져도, 권위라는 괴물은 숙주를 옮겨다니며 반복됐다. 보수정당을 무찌르자던 열린우리당에서도 518 술자리 파문처럼 보수정치인의 행태는 살아남았고, 진보정당들도 이런 행태에서 완전히 자유롭다고 할 수 없다.

꼭 정치인이라서 이럴까. 가장 샤방샤방하다는 아티스트들조차 내부 문화는 고위관료들과 다를 바 없지 않던가. 오래전에 어디선가 읽었던 글이 떠올랐다. 이 글도 벌써 7년 전이다.

1999년 6월. 고려대학교 노천극장. 1999 콘서트 자유의 열기가 뜨겁다. (중략) 윤도현 밴드에 이어 김진표라는 랩송 가수 등장. 청중들의 반응에서 그의 인기를 직감한다. 같이 같 딸아이의 설명에 의하면, 정통 록을 구사하던 넥스트의 멤버들과 최근에 같이 팀을 만들었단다. 그 랩퍼는 자기는 어른들이 싫다며 기성 세대를 향해 직격탄을 날린다. 김진표가 "외쳐 봐"하고 절규하면, 우리는 다시 "닥쳐 봐"하고 소리 지른다. 자신이 싫어하는 어른들에게 입 닥치라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다는 것이다. 김진표가 "아저씨"할 때마다, 중학교 1학년인 딸아이는 손가락으로 나를 가리키며 "닥쳐봐"라고 악을 쓴다. 충분히 반항적이고 전복적이다. 어느 새 반항의 주체가 아니라 대상이 된 어설픈 나이가 씁쓸하다.

그러나 정작 씁쓸한 것은 자신의 밴드 멤버들을 소개하는 그 가수의 태도이다. 어른들에게 "닥쳐 봐" 하던 기세는 온 데 간 데 없고, '형님들'을 소개하고 대하는 그의 태도는 '조직의 쓴맛'을 본 사람처럼 정중하기 짝이 없다. 어느 쪽이 그의 진짜인지 판단할 길이 없다. "닥쳐 봐"는 상업적 전략이고, '형님들'이 그의 진짜라는 혐의를 쉽게 지울 수 없다. 이 랩퍼의 몸에 밴 규율 권력은 어디서부터 유래하는 것인가 하는 생각에, 아직 "닥쳐봐"를 되네는 딸아이의 손을 잡고 내려오는 밤길 내내 마음이 무거웠다.

 -임지현, <이념의 속살>, 삼인, 2001

이 글과 관련있는 글을 자동검색한 결과입니다 [?]

by H군 | 2008/10/05 17:17 | 세상 보기 | 트랙백 | 덧글(2)
트랙백 주소 : http://socia.egloos.com/tb/2085453
☞ 내 이글루에 이 글과 관련된 글 쓰기 (트랙백 보내기) [도움말]
Commented by creep23 at 2008/10/06 14:09
"친구처럼 믿음 있고 친근함이 묻어나는 학생회", "연인처럼 함께 하고 싶은 학생회"를 만들겠다던 '비운동권'이 '○○○ 총학생회장님' '○○○ 부총학생회장님'이란 표현을 쓰는 건 어쩌면 당연하지 않을까? 민주적 절차를 통해 선출된 정치적 대표체여야 할 학생회를 동창회나 친목회 분위기로 만들겠다는 생각을 가진 이들이라면 충분히 그럴 듯도 싶다.
가족과 또래집단을 벗어나 공적인 공간(이 곳에서 경제적, 정치적 거래가 발생한다고 볼 수 있다)에 나온 인간이 가장 먼저 배워야 할 것은 타인에 대한 거리감(좀 더 정서적으로 표현하면 '서늘함'이랄까?)이라고 생각한다. 그게 있어야 타인에 대한 존중, 책임감 등도 생긴다.(쉽게 말하면 give and take)
보통 사람들은 '친구'나 '연인'에게 정색하고 책임을 따져 묻지 않는다.('선배'나 '후배'에게도) 그 뜨뜻미지근한 심리 속에서 권위는 기생하겠지.
이건 아무리 '반항적이고 전복적'이 되어봤자 해결될 수 없다. 손쉬운 처방은 '개인주의'가 되겠지만, '개인'으로서 꿋꿋이 살려면 치러야 할 비용이 너무 많다. 경제학적으로 말하면 '인적 네트워크'에서 소외되는 거지. 어린 친구들에게서 뜻하지 않게 권위에 굴종하는 모습을 자주 목격하게 되는 건, 아마 그들이 집단의 규칙을 따를 때와 거스를 때의 편익과 비용을 무의식적으로 계산해서 그러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p.s)지난 8월에 연고전을 앞두고 응원단이 대운동장에서 응원연습을 하는 걸 봤는데, '군대식 얼차려'가 횡행하더군. 물론 군대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약한 강도라서 나는 우습기만 했는데, 음대에서 발생했던 구타 사건(한겨레에서 보도)이 생각나서 너한테 제보할까 하다가 그만뒀다. ㅋㅋㅋ
Commented by H군 at 2008/10/07 21:35
음.. 그런건 말이다. 제발 좀 제보해줘. ㅜㅜ 나도 그런 기사 좀 써보자...

:         :

:

비공개 덧글

< 이전페이지 다음페이지 >


최근 등록된 덧글
최근 등록된 트랙백
《9.11》 오늘이 무슨 날..
by Pour Viver Ici
몰란던 노래속의 의미 C..
by 무엇을 구하려거든 전부..
아옌데의 마지막 연설.
by 게으름의 위대함.
경찰의 이랜드 노조 강제..
by Image Generator
rss

skin by 이글루스